낭만에 대하여2021. 2.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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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를 보며 로드 트립 (Road Trip : 장거리 자동차 여행) 영화를 보며 우리 나라 면적이 작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반도의 면적도 넓지 않은데, 그마저도 반으로 나뉘어서 한반도의 끝과 끝을 달리는데는, 교통 상황만 괜찮다면, 5~6시간이면 충분하고 고속도로가 잘 닦여있는 곳은 3~4시간도 가능하다. 이런 작은 나라에 살다보니 로드 트립은 뭐랄까, 전국 일주나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도를 일주해야만 가능할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첫 로드 트립은 미국이었다. 뉴욕에서 워싱턴 D.C로 간 게 먼저지만 그 정도 거리는 한국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거리인 것 같고, 뉴욕에서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는 길이 첫 로드 트립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 전이니 당시에 어느 고속도로를 타고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도로와 달리는 차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뉴욕의 교통 체증을 뚫고 나온 뒤로 계속 달렸던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에 도착했을만한 시간인데, 잠깐 점심을 먹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휴게소를 들르는 것 외에는, 계속 그렇게 달렸는데, 늦은 오후 시간에 겨우 미국의 4개 주를 거쳤고 아직 더 가야한다는 걸 깨닫고 미국이란 땅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새삼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볼 일을 보고 올라오기 전에 잠시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에 들렀다. 유명한 대학이었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양지바른 푸른 잔디를 보고 그 자리에 편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극도의 피로감에 스르르 잠들었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피곤한 첫 로드 트립과 달리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들은 매우 낭만적이다. 로드 트립에 대한 로망을 갖게 하는 이야기와 풍경을 담고 있어서 이 영화들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현실과 영화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고, 우한 코로나 시대를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에브리타임 룩 앳 유 (303)

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포스팅을 쓰게 한 가장 최근에 본 로드 트립 영화이다. 한국에선 흔치 않은 독일 영화인데, 학생인 두 청춘 남녀가 각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같이 여행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율은 스페인에서 공부 중인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캠핑카를 끌고 길을 나섰다가, 쾰른으로 가려는 카풀 예약을 바람 맞고 히치 하이킹을 하던 얀을 만난다. 두 사람은 워낙 맞질 않아서 율은 냉큼 얀을 내버려두고 갈 길을 가기로 한다. 그러다 캠핑 사이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얀이 율에게 도움을 주게 되면서 쾰른으로, 그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떠나며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고, 초중반에는 두 사람의 가치관이 날카롭게 서로 대립하는데 마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제시와 셀린의 대화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꽤 반가운 형식이기도 하고, 10여년 전과 지금의 청춘은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나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면 말은 점점 줄어들고 함께 보고 듣는 것에 촛점이 더 맞춰진다. 대략 영화가 끝나기 30~40여분정도부터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펼쳐진다. 캠핑카 안에서 도로를 바라보는 모습, 캠핑카가 달리는 높고 가파른 산길과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길 같은 것들, 오래된 도시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달리는 캠핑카의 뒷모습 등등 우리가 그리워하는 유럽 여행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 좋았다. 최근 캠핑을 시작했다면 더더욱 이 로망이 와닿을 것 같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오늘은 영화를 통해 이 낭만을 누려봤으면 좋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엘리자베스 타운 (Elizabeth Town)

밋밋했던 나의 첫 로드 트립 기억을 뒤집고 로드 트립의 낭만을 알게 한 영화이다. 무려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했던 영화인데, 크게 흥행을 하진 못 했다. 내 생각엔 긴 러닝 타임에 비해 이야기가 조금 매끄럽지 않고 진행이 느리다 보니 지루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듯 한데, 나는 괜찮았던 영화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미국의 유명한 신발 업체에서 일하는 연구원인 드류가 디자인한 신발은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회사에 많은 손해을 입힌다. 그래서 해고를 당하게 된 드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찰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켄터키주 엘리자베스 타운으로 향한다.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 클레어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하지만 그에 비해 그의 우울함과 좌절감은 너무 컸다. 그렇게 도착한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그는 또다른 사람과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면 매력이 조금 반감되지만, 삶과 죽음, 실패와 재기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보는 시선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클레어가 준 가이드북을 바탕으로 로드 트립을 떠나는 드류의 발걸음은 참으로 의미있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표정을 보면서 그의 고장났던 내면의 어느 부분이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여행은, 그리고 자기만의 시간과 누군가의 적절한 도움은,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걷고, 떠날 수 있게 하는 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런 따스함이 느껴졌기에 나는 이 영화의 로드 트립이 아름다웠고 길 위에서의 낭만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파리로 가는 길 (Paris Can Wait)

이 영화는 추천하기엔 불륜을 애매하게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도 그렇고, 열린 결말도 그렇고, 여튼 로맨스라고 보기엔 이야기 자체는 조금 그렇다. 그러나 투닥 거리는 두 사람이 걷는 프랑스의 길과 자크가 전하려고 했던 여유 그 자체는 참 아름답다.

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남편은 부다페스트에 출장 일정이 있어 가야만 한다. 혼자 파리로 가는 부인이 마음에 놓이지 않던 차에 사업 파트너인 자크가 파리까지 함께 동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너무 맞지 않는 두 사람, 원칙주의자 앤과 세상 태평한 자크의 조합을 보다 보면 그 사이에 벽에 답답해진다. 게다가 자크는 은근한 추파를 보내는데.. 과연 여행을 잘 끝낼 수 있을지, 다이안 레인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따라가며, 그리고 다이안 레인의 미소를 기억하며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칸에서 파리는 쉼없이 달린다면 자동차로 8~9시간, 빡빡하게는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그 길엔 멋진 장소도 맛있는 음식도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다. 목적지만을 향해 달려갔다면 알 수 없고 경험해볼 수 없었던 것들을 앤은 갑자기 맞닥뜨린다. 처음에는 뒤쳐지는 일정에 거부감만 들었는데, 점점 그 속에서 여유를 찾게 된다.

그렇다, 파리는 기다릴 수 있다 (Paris can wait).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답답하게 막힌 여러가지 기회들, 그것이 재충전을 위한 가벼운 여행일 수도, 삶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취업이나 사업이었을 수도, 인생에서 한번뿐인 입학/수능/졸업 등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평범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누군가 앗아가버린 것 같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기회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모습, 예상치 못한 모습, 어쩌면 원치 않았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이라고, 나는 영화를 빌어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포스터가 여행을 장려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랜선여행] 겨울과 영화 (러브레터)와 오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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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매화 꽃과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Vincent Van Gogh's Blossom Almond,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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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1. 1. 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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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겨울의 이미지는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일본에 살아봤던 것도 아니고, 겨울에 일본 여행을 자주 갔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라던 시절 내내 살았던 곳들은 겨울이면 눈이 한번 올까말까한 곳들이었고, 철이 들어서 몇 년간은 겨울이면 쌓인 눈이 봄까지 녹지 않는 곳에 산 적도 있어서 눈이 지겨워졌을 정도이니, 겨울이면 그런 곳들이 떠올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겨울이면 일본이 생각난다. 그 시작이 어디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겨울'의 이미지를 각인 시킨 것은 내가 살았던 곳도, 내가 여행갔던 곳도, 내가 가봤던 스키장도, 자고 일어나면 보곤 했던 눈이 덮여있던 마당도, 미끄러웠던 골목길도, 꽁꽁 얼은 호숫가도 아니었다. 조금 엉뚱하겠지만 내게 겨울 이미지, 겨울 감성, 겨울의 멋을 알려준 영화는 오래된 일본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이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

겨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레터"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눈밭에 누워 숨을 참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 장면이 이어진다. 추모식 후, 우연히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그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낸 히로코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의 옛주소로 안부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절대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답장을 받게 되어 매우 놀라는데, 알고보니 이츠키가 다녔던 중학교의 동명이인이었던 동창생, 도서관 사서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런 우연으로 둘은 편지를 주고 받게 되고 그러면서 과거의 후지이 이츠키와의 추억을 나누는 것은 물론, 그들이 알지 못했던 이츠키의 비밀도 알게 된다.

와타나베 히로코가 등장한 첫 장면부터, 한국에서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오껭키데스카, 와따시와 껭키데스 :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를 유행시켰던 명장면이 나온 설원, 후지이 이츠키가 살고 있는 눈이 많이 오는 오타루까지, 영화에서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얀 겨울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나간 사람과 잊혀졌던 추억과 전하지 못 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겨울 풍경 위에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겨울의 이미지가 영화와 함께 더욱 더 깨끗하고 맑게 기억에 남게 된 것 같다.

<러브레터> 포스터

그래서 마침내 오타루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부푼 꿈을 안고 갔었다. 도시 전체에서 영화 "러브레터"를 느낄 것이라 예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작 일본에서는 흥행하지 않았던 영화라는 걸 깜빡했다. 그보다 오타루는 오르골로, 디저트로, 그리고 운하로 유명했고 그래서 나의 여정은 유명한 오르골당을 구경하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상상했던 겨울의 도시 오타루답게 전날 내렸던 눈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운하에 도착하니 어느새 내 머리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오는 건 반가웠지만, 눈속에서 뚜벅이로 몇시간을 다니는 건 아무래도 지치는 일이다. 오타루에서 하룻밤을 잤어야 일정이 넉넉했을텐데, 삿포로에 숙소를 잡아둔 과거의 나의 결정에 아쉬움을 느끼며, 기차가 가득 차기 전에 돌아가기 위해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그렇게 나의 첫 오타루 방문은 싱겁게 끝났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이 바뀌어버린 러브레터 촬영지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츠키의 집은 전소되어 집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미리 철저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왠지 다시 가더라도 그 때 그 장면을 찾아낼 수도, 느낄수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편으론 눈 오는 오타루를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싶다. 눈이 가득 쌓인 오타와에서 자전거를 타고 걷고 뛰었던 후지이 이츠키처럼, 그런 오타와를 한달음에 달려갔던 와타나베 히로코처럼,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도 그 곳에 있었으니까. 생각과는 달랐던 오타와였는데,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일본의 겨울 풍경에 대한 나의 감성은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는 이유다.

 

겨울엔 유키미부로(雪見風呂 눈을 바라보며 노천 온천 즐기기)

[랜선여행] 캐나다의 겨울과 스탠딩 에그의 Miss You

[랜선여행] 이효리와 아이유가 올랐던 금오름, 리틀 백록담 느낌

국내 여행기 / 후기 / 에세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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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12. 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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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겨울이 왔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캐나다에서 맞이한 겨울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캐나다가 떠올랐다.

준비없이 마주한 캐나다의 겨울은 내 예상보다 매서웠다. 서울의 고층 빌딩 사이의 칼바람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겨울이면 따뜻한 구들방에 누워 이불을 돌돌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나는 알 수 없었던 추위였다. 그래서 바람이 스쳐갈 수 있는 부위를 최소화하고 나를 지켜보고자 온 몸을 꽁꽁 싸매보았지만, 눈은 어쩔 수가 없다. 살짝 맨 살이 드러난 얼굴이 바람때문에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어느새 아무 감각이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눈가가 서서히 뻑뻑해지기 시작한다. 눈을 깜빡거리는데 필요했던 그 최소한의 촉촉함이 어느새 얼음같이 얼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건 마치 전화기 너머로 담담한 네 목소리를 듣고 빠르게 온기를 잃고 식어가는 내 마음과 같았다. 

누가 들으면 남들과 비슷한 그저 그런 연애 이야기들 중의 하나일텐데, 그 당시 나는 그 담담한 목소리가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은 너를 만났던 여름의 그 뜨거움을 그대로 갖고 있는데, 그저 나와 같지 않은 온도에 온 몸이 흔들거릴 만큼 나는 너를 믿지 못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로 네가 대단했던 건지. 세상과 우리를 둘러싼 그 무엇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너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남들보다 길었던 나의 여름은 그렇게 끝났고 갑작스레 매서운 캐나다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되었다.

스탠딩에그 앨범 자켓

https://www.melon.com/video/detail2.htm?mvId=50143207&menuId=29010101

 

Miss You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

www.melon.com

 

스탠딩 에그의 앨범 자켓 사진은 마치 캐나다의 겨울 호수 같았다. 눈이 내린 숲과 호수 위로 물안개인지, 눈바람인지가 하얗게 서려있다. 그리고 담담하게 혼자 서 있는 누군가. 그 뒷모습이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홀리듯이 나도 모르게 재생 버튼을 누르니 부서진 마음에서 새어나오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빛을 잃은 내 맘에

내려앉은 그리움에

둘 곳 없는 기억에

오늘도 난 헤메이네

추억을 하나씩 더듬어 짚어가

I don't wanna say good bye now (miss u)

지워지는 기억보다 (miss u)

더해지는 게 많아 (miss u)

broken heart

 

눈구름에 가려져 흐린 하늘 아래, 꽁꽁 얼어버린 온타리오 호수 (Lake Ontario). 그 앞에서 온 몸을 때리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여러 생각들을 하며 속을 달랬다. 주위 사람들과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때때로 웃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혼자가 아니었는데도 아무도 함께해줄 수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노래 한 곡을 수백 번을 들으며 기억의 편린을 하나하나 다시 살폈다. 미처 추스르지 못 했던 마음을 다독였다. 노래가 이렇게 위로가 될 수 있구나. 괴로워서 외면하고 잊어버렸던 시간들이었는데, 다시 찾아가 볼 생각도 하지 못 했던 장소였는데, 이제는 노래 선율과 함께 자연스레 떠올리고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감정의 밀도가 옅어진 걸까. 마음의 크기가 작아진 걸까. 시간이 그만큼 지나가버린 걸까.

아직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를 찾았다는 것이, 그 노래를 들으면 떠올릴 장소와 추억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맛집] 캐나다 캔모어 베이글 추천 - 록키 마운틴 베이글 컴퍼니 (Rocky Mountain Bagel Co.)

미국 & 캐나다 여행기 / 후기 / 에세이 리스트

한때 잊어버렸던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다시 느끼다

국내 여행기 / 후기 / 에세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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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10. 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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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생각해보면 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전업 여행가도 아니라 비행기는 여행 가기 위해 종종 탔을 뿐이다. 그런데 고작 반년 넘게 비행기를 타지 못 했다고, 마치 당연히 누려야할 혜택을 못 누린 것처럼, 버스나 지하철이 멈춘 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좋아하느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우한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단지 여행지를 가기 위한 가장 빠르거나 편한 교통편으로 비행기를 이용했을 뿐이었다. 공항에 찾아가서 수속을 하고, 원하는 자리를 예약하기 위해 미리부터 신경쓰고, 불특정 누군가의 옆에 앉아 식사를 해야하고, 다리를 펴거나 몸을 비틀기도 힘든 좁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하고, 장시간 타면 멀미가 나서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고 뜬 눈으로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야 하는 비행기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가능한한 피하고 싶은 교통 수단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가장 보편적인 이코노미석 기준이다..^^).

그랬는데, 단 몇개월만에, 고작 제주도까지 한시간도 채 안되는 거리를 날아가는 거였는데, 우한 코로나때문에 기내식도 하나 주지 않고, 갑작스레 결제해서 제값 다 주고 표를 샀는데 비행기는 어쩌다보니 스크린도 없는데도! 비행기가 뭐라고, 공항 가는 길이 설레였다.

나의 첫 비행기 탑승은 제주도를 가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로만 듣던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데 며칠동안 꽤 설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만들어주었던 알록달록한 어린이 마일리지 카드를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다. 안타깝게도 첫 탑승에서 창가 자리는 앉을 수 없었지만, 빠르게 땅을 달리던 비행기가 어느 순간 부웅 오르는 듯 하더니 귀가 멍멍해졌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 그렇게 멍멍한 상태로 제주도까지 갔다. 착륙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고도 귀는 여전히 멍멍해서 옆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심지어 귀가 점점 아파오니까 이대로 귀가 들리지 않을까봐 무서워서 울었었다.

그랬었는데, 처음 비행기로 해외를 간 뒤로 한동안 비행기를 타는 게 즐거웠다. 비행기 안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다보면 나를 내가 잘 모르는 새로운 도시로, 또는 그리웠던 집으로 데려다 준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이 여권과 지갑을 넣은 가방만 들고 덜렁덜렁 탔었는데, 탑승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기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것, 기내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챙기다보니 가방은 점점 무거워졌었다. 그리고 나이가 더해진 나는 점점 예민해져서 비행기의 좁은 좌석이 불편해졌고, 기내식이 맛이 없어졌고, 기내에서 잠이 잘 오지 않게 됐고, 없던 멀미가 생겼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고생스러워졌다.

몇 달만에 비행기를 타자니, 알고 있었으나 오랜 시간 잊혀졌던 비밀의 정원에 발을 딛는 느낌이었다. 귀찮았던 탑승 수속도 반가웠고, 처음 보는 승무원인데 오랜만에 본 친구인양 괜시리 반가웠다. 창 밖으로 비행기가 뜨고 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난 듯 설렜다. 하늘이 흐려도, 비가 와도, 하늘이 맑아도 좋았다. 하늘 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내가 사는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내가 사는 세상이 새삼스럽다. 전체적으로 현재 상황은 답답하지만, 이런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서, 이런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서 감사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본 기사에서 목적지 없는 비행기 표를 산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와는 조금 다른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마음만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이런 순간도 있음을 감사하며, 이런 깨달음도 알게 됐음을 감사하며, 조금만 더 잘 버텨보자.. :-) 

 

※ 관련 기사 : 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9/24/2020092403323.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아시아나 '국내 상공 비행상품' 판매 반나절만에 완판

아시아나항공(020560)의 A380을 활용해 국내 상공을 비행하는 관광 상품이 반나절 만에 완판됐다. 국내 항공사에서 일반 승객을 대상으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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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9. 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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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나갈 수 없으니, 가능하면 틈틈이 국내 여행이나, 하다 못해 집 근처 동네 탐방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집에서 무언가를 보고 즐길 시간도 많아졌다. 그 중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줄 미술 관련 영화를 보면서 겸사겸사 영화 속 랜선 여행도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1. <미드나잇 인 파리> 프랑스 파리

 □ 2012년 영화

좋아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나름 재밌게 봤다. 특히 1920년대와 그 시대의 예술가들을 선망하는 주인공 '길'이 시간 여행을 하여 그들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나 또한 인상파와 그들의 시대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영화 말미에, '길'이 부러워하던 그들 역시도 그들보다 이전 시대를 동경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또는 멀리 있어서 잘 모르는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것인가, 라는 현자타임이 오기도 한다.

 □ 여행지

프랑스 파리(Paris)가 주된 여행지이고, 걸어다니는 장면이나 카페 장면 등을 통해 파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영화를 곰곰이 되돌아보면 주인공 길은 작가들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하고, 스치듯 지나갔던 미술 작품과 여행지들은 약혼녀가 더 관심있어했다. 예를 들면 로댕 박물관이라던가, 오랑주리 미술관이라던가. 그래도 아름다운 파리의 곳곳을 보여주니, 이 영화부터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 또한 파리는 이미 여행을 다녀왔던 곳임에도, 영화를 보니 다시 새롭게 느껴져서 또 가고 싶어졌다. 특히 시계 종이 울리고 택시가 왔던 생 에티엔 뒤몽 교회 계단(Saint-Étienne-du-Mont)이 첫번째로 가봐야할 곳이다. 혹시 모르잖는가. 내게도 마법이 시작될지.

 

2. <우먼 인 골드> 오스트리아 빈 (+ 미국 뉴욕)

 □ 2015년 영화

'클림트'가 '마리아 알트만'의 큰어머니 '아델레'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유대인의 재산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빼앗겼고, '마리아' 가족은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그 그림을 되찾고자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8년에 걸친 긴 소송을 시작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 여행지

영화의 주된 배경, 특히 그림이 그려지고, 그림을 찾기 위해 소송이 벌어졌던 장소는 오스트리아 빈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언급하는 화가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키스"가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 전시되어있으니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이제 오스트리아에 없다. 영화 말미에 나왔듯이 이젠 미국 뉴욕에 전시되어있다. 이 사실을 몰라서 뉴욕에 몇번이나 갔으면서도 초상화가 있는 미술관을 가본 적이 없다. 지금에라도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 뉴욕을 가게 되면 노이에 갤러리에 꼭 가봐야겠다.

 

3.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 2016년 영화

솔직히 영화 자체의 재미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와 배우들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보았다. 에곤 쉴레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기에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추천한 5편 중 유일하게 19금이다. 후훗.

 □ 여행지

영화는 대부분 작업실이나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데 중간중간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가 나왔기에 체스키 크롬로프를 소개한다. 게다가 에곤 쉴레의 그림은 오스트리아에도 많이 있긴 하지만, 체스키 크롬로프가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라 이 곳에 머물며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쓰는 일 등으로 인해 평판이 좋지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센터를 운영하며 기념품들을 팔고, 가이드는 단골 가게였다던 피자 가게 등으로 관광객들을 인도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 지금 사는 사람들이 뭔 죄겠냐 싶다. 게다가 에곤 쉴레가 평온하게 작품 활동을 했겠다 싶을 만큼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화 마을 느낌이라 내게는 에곤 쉴레 하면은 체스키 크롬로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왼쪽부터 파리 에펠탑 / 벨베데레 궁전 로비 / 체스키 크롬로프

 

4. <러빙 빈센트> 프랑스 아를

 □ 2017년 영화

무려 107명의 아티스트들이 10여년동안 유화를 그려서 제작한 영화다. 고흐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처음엔 움직이는 유화로 바뀌는 배경과 사람이 조금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적응되니까 매우 아름답다. 영상과는 다른 느낌으로 그림이 살아움직이는 느낌이다. 

빈센트의 죽음 이후 '아르망'이 '빈센트'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빈센트의 자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생전에 그를 알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부분 그가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다. 즉, 고흐의 명작이 계속 나온다) 그에 대해 알아간다.

개인적으론 결론이 매우 애매하게 열린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 여행지

영화에서 나오는 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 프랑스 아를(Arles)과 죽기 전 고흐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다는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를 꼭 찾아봐야하지 않을까. 이 곳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보니 관련 등장인물과 배경도 영화에 많이 나온 듯 하다. 프랑스는 파리만 몇번 방문했는데 남부의 아를은 멀었다치더라도 근교의 오베르쉬아즈도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언젠가 프랑스에 다시 간다면, 파리를 잠시뒤로 하고 유화로만 접했던 아를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그러면 나도 반고흐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네덜란드 델프트

 □ 2004년 영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우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재로 만든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 느리고 조용한 전개 속에서 아슬아슬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빛과 색감으로 순간순간 그림과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영상에 반했다.

 □ 여행지

네덜란드 델프트가 주요 촬영지 중 한 곳인데, 영화 배경은 중세라서 지금 도시 느낌과 다소 다른 듯 하다. 그래도 네덜란드만의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고 네덜란드엔 빈센트 반 고흐의 박물관도 있다고 하니 꼭 가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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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8. 1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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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 으례 떠오르는 한국영화, "건축학개론"은 격무와 술과 삶에 찌든 건축사 승민(엄태웅)에게 서연(한가인)이 찾아와 제주도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를 보자마자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더라니, 알고보니 그녀는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청춘이었던 승민의 첫사랑이었다.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는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조별 과제를 같이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고, 좋아하는 감정은 점점 커졌지만, 밤 늦게 찾아간 그녀의 집 앞에서 생긴 오해로 인해 마음을 닫고 그녀와 멀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불쑥 승민을 찾아온 서연은 집을 지어주겠다던 승민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건축주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가까워지고, 고이 접어두었던 추억이 떠오르고,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감정이란 것 때문에 결혼을 앞둔 승민은 흔들린다.

 

201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첫사랑'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성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고 서툴렀기에 아쉬움이 남고, 그렇기에 더 애틋하고 아련한 그 느낌이 잘 살아난 영화였다. 현실적이고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은 잘 가리면서도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나름 현실적인 태도가 이 영화를 마냥 로맨스 영화로는 볼 수 없게 만든, 영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는 집, 제주도 서귀포시에 자리한 카페 "서연의 집"은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집이다. 다만 영화 속 집과는 달라진 모습이 꽤 있다.

서연의 집 2층 풀밭

가장 먼저 지붕. 개인적으로는 서연이 맨발로 기와 지붕 옆 풀밭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마침내 건축을 마무리하며 승민과 함께 누워 있던 장면이, 뭐랄까, 잡을 수 없는 그 때 그 시절을 제주도 바다와 하늘에 보내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녀를 속박하던 많은 것을 던지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기도 해서 마음에 와닿았었는데, 이 공간이 영화와 많이 달라져서 아쉬웠다. 그래도 하늘과 바다와 풀밭이 맞닿은 2층 공간의 풍경은 멋있긴 했다. 나만큼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 풍경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출처 : 티저 영상

긴 폴딩 창문으로 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던 거실은 다행히 그대로 카페 공간이 되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영화에서만큼 개방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사진도 못 찍었다. 그래도 만약에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 갈 수 있다면 제주도를 즐기기 참 좋을 것 같은 곳이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카페 건물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엔 영화 속에선 없었던 별채 개념의 건물도 있다. 기다란 창문과 따뜻한 조명이 눈길을 끄는 아늑한 공간이다. 사진도 꽤 잘 나오는 곳인데, 본관 건물에서 영화의 흔적을 찾느라 별채에서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간 사람과 창 밖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엔 오히려 별채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위 : 서연의 집 외관, 아래 : 별채 내부

이렇게 카페에는 아직 영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영화 속 장면이나 포스터도, 배우들의 글이나 사진도, 영화를 봤던 그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창 너머에 보이는 제주도의 바다와 하늘이, 그리고 다시 돌아온 첫사랑의 부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어도 이 공간을 다시 찾아오게 하는 그 어떤 그리움이 되는 것 같다.

"건축학개론"의 흔적

 

<For Your Information>

영업 시간 : 매일 10a.m.~7p.m. (6~8월엔 9p.m)

주소 :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해안로 86 (지번 : 위미리 2975)

출처 :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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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7. 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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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갑자기 눈을 의심케 할 만큼 블로그 방문자가 늘었다. 무슨 시스템 오류가 생겼나 해서 방문 통계를 뒤적거렸는데 모두 다음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다음 검색이 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왜일까 싶어서 링크를 타고 거꾸러 찾으러 다녔는데, 여행 메인 페이지에 나의 글이 소개된 것~

경축일세~ 감사합니다, 다음 담당자님, 그리고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앞으로 더 진솔하게, 즐겁게, 블로그에 저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풀어놓겠습니다.

자주 뵙게 되길 고대합니다 :-) 

 

다음에 소개된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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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5. 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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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이 다가올 때 쯤이면, 전남 광양 매화마을의 홍쌍리 청매실 농원에 가고 싶다. 동백처럼 겨우내 빠알간 빛을 발하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은 긴 겨울동안 잠들어 있다가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면 꽃이나 잎을 피운다. 많은 사람이 봄에 피는 벚꽃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벚꽃보다 이른 봄에 피는, 언 땅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려주는 매화를 기다리곤 한다. 그런 매화가 백운산 자락을 타고 심겨져 있는 곳, 봄이면 하얀색(백매화),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색(청매화), 붉은색(홍매화) 매화가 반기는 곳이 바로 홍쌍리 청매실 농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매화축제 때는 청매실 농원에 가본 적이 없다. 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하얀 꽃보다 검은 머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꽃에게 눈인사할 시간도 없이 떠밀리듯 걷기 싫어서, 나는 매번 매화축제를 비켜서 청매실 농원엘 갔다. 그러다보니 흐드러지게 만발한 매화를 본 적이 없다. 지나치게 한발 빨라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나무 몇그루만 만나거나, 지나치게 느려서 이미 꽃이 피고 지나간 자리만을 더듬곤 했다.

유일하게 단 한 번, 매화축제가 끝난 뒤에 방문했을 때, 매화꽃이 떨어지지 않은 나무들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도 활짝 핀 상태는 아니었다. 지나가던 어르신 말에 따르면, 내가 방문하기 일주일 전쯤에, 햇빛을 덜 받는 나무들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 뒤늦게 활짝 피어올랐다가 이제 막 져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아란 하늘 아래에 하얗게 핀 매화 꽃을 보니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Blossom Almond)>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https://www.vangoghmuseum.nl>

고흐가 머물고 있던 남프랑스에서는 아몬드 꽃이 매화처럼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빨리 꽃을 피워 봄을 알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아직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접했지만, 푸른빛이 도는 민트색 하늘 아래 분홍빛이 묻어난 하얀 아몬드 꽃들은 사진으로만 봐도 참 예쁘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려졌다고 해서인지, 대담한 터치나 나무의 구도를 보면 우리나라 옛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매화를 보며 고흐의 아몬드 꽃이 떠오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꽃의 모양과 색깔뿐만 아니라 구도나 전체적인 분위기 등이 서로 비슷하게 닮아있으니까 말이다. 비록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다른 꽃이지만, 그럼에도 반 고흐가 담고자 했던 아름다움이 그 모든 다름을 초월하여 느껴지는 듯 하다.

이 그림은 고흐가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고흐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는 1890년 2월에 태어난 아들에게 형의 이름 '빈센트'를 붙여주었고, 고흐는 조카에게 희망찬 봄과 새생명을 상징하는 예쁜 꽃나무 그림을 그려서 선물했다. 그러나 밝은 그림과 달리 이 시기는 고흐의 가장 힘들었던 말년이었고, 결국 반 고흐는 1890년, 그리고 동생 테오도 1891년에 뒤이어 세상을 떠났다. 비록 삼촌과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 아기 빈센트의 곁을 떠났지만, 아기 빈센트는 그들이 남겨둔 그림들을 잘 간직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이 생기는데 일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보면 마치 고흐가 조카에게 보내고자 했던 '희망'이라는 선물이 조카의 손을 거쳐 결국 우리에게로 전해진 것만 같다. 그 희망을 안고서 새롭게 봄을 맞이해야겠다고, 다시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매화 꽃을 보면서, 아몬드 꽃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다시, 또, 봄이다.

웹사이트 : https://www.vangoghmuseum.nl/en/collection/s0176V1962?v=1

 

Almond Blossom - Van Gogh Museum

Almond Blossom, 1890,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www.vangoghmuseum.nl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s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축제] 시카고 세인트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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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4. 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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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다. 올해는 그들도 힘들었는지, 동네 어귀에 벚꽃들이 해거리를 하는 듯 피어난 꽃들이 작년보다 작다. 그나마 하이얗게 피어난 벚꽃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 했는데 곧 질 것 같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거리더니 어느새 살랑살랑 조그마한 벚꽃잎이 떨어져 흩날린다. 그렇게 바닥에 점점이 알알이 흩어져있는 벚꽃잎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그림들이 있다. 바로 점을 찍어서 그렸다는 조르주 쇠라의 그림들이다. 그 중 책에서 자주 봤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on La Grande Jatte)>가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있었다.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European Painting and Sculpture : Gallery 240에서

미술관에서 직접 보니 생각보다 그림의 크기가 컸다 (207.5 × 308.1 cm, 출처: Art Institute of Chicago). 키를 훌쩍 뛰어넘는 큰 그림이 걸려있는데, 다가가면 수많은 다른 색깔의 작은 점들이 보인다. 조르루 쇠라의 작품과 기법은 미술 시험의 단골 소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쇠라는 다른 화가처럼 물감의 여러 색을 혼합해서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색의 점들을 일일히 찍어서 전체 그림을 보면 잔상 효과로 인하여 다른 색깔이 보이도록 하는 점묘법(點描法, pointilism)을 고안했다 (출처: https://www.scienceall.com/조르주-쇠라-빛을-과학적으로-분석하라/). 가까이서 보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색의 점들이 보인다. 그러나 물러서서 보면 처음에 봤던 그 색깔이다. 이 큰 캔버스를 점으로 뒤덮다니, 그것도 어느 색깔들을 배치해야 그림을 볼 때 원하는 색깔로 보일지 생각하면서, 우리네 어머니가 "한땀한땀" 바느질 하듯 정성스럽게 그렸으리라. 글로 어렴풋이 배워온 이 신비함은 그림을 직접 마주해야 현실이 된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줌인으로 찍은 사진으로 그 감동을 남겨놓고 싶었지만, 책이나 모니터 속의 그림은 이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이제보니 쇠라의 작품이 동네 길가에도 찾아온 느낌이다. 푸른 풀밭 위에도, 텃밭 거름더미 위에도, 놀이터 우레탄 바닥 위에도, 아스팔트 도로 위에도 하얀색 벚꽃이 점점이 찍혀있다. 매일 지나가던 평범한 장소들이 어여쁘게 보인다. 매일 마주했던 평범한 풍경들에서 봄을 느낀다. 벚꽃으로 인해 평소와 달라보이는 색깔들, 자연이 찍어낸 점묘법인가 싶다. 조르주 쇠라의 그림이 그리우면서도, 집 앞의 자연이 수놓는 새로운 선물에 설레이는 벚꽃 계절이다.

 

웹사이트 : https://www.artic.edu/artworks/27992/a-sunday-on-la-grande-jatte-1884

 

A Sunday on La Grande Jatte — 1884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Georges Seurat, 1884/86

www.artic.edu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봄을 알리는 매화 꽃과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Vincent Van Gogh's Blossom Almond, 1890)

[랜선여행] 겨울과 영화 (러브레터)와 오타루

한때 잊어버렸던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다시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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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3. 2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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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올해 가기로 했던 여행 계획을 접고 미리 예약했던 곳을 취소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 든다. 떠나지 못한 나의 계획을 듣는 사람 중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아마 있을 것이다.

 

2월 말~3월 초/중순 : 이탈리아 북부 > 프랑스 남부 > 스페인 남부 여행

 → 이탈리아(3/7), 스페인(3/14), 프랑스(3/15) 비상사태/봉쇄령 선언 

 

3월 중순~4월 중순 : 미국 뉴욕 > 아르헨티나 > 볼리비아 > 페루 > 칸쿤 여행

→ 미국 뉴욕 자택대피령(3/20)

→ 아르헨폐티나(3/16), 페루(3/17), 볼리비아(3/20) 국경 폐쇄

 

물론 내가 가려고 계획했던 나라들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국가가 오늘 기준으로 179개국이니 (외교부 공지사항 첨부 문서 참고), 어느 나라를 여행한다고 계획했든 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200325_국가순서별_1000.pdf
0.23MB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지도에 내가 가려던 나라들이 유독 빨갛게 물든 것을 보면, 괜시리 내가 민망해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한다. 어차피 올해는 마음을 비우고, 그동안 미뤄뒀던 여행 후기나 블로그에 차근차근 올릴 생각이니, 부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의 확산세가 줄어들고, 더이상 희생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천천히 회복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여러모로 힘들 것 같은 2020년이지만, 결국 이겨내어, 다시 여행의 낭만을 꿈꾸는 날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출처 : https://coronaboard.kr, 2020. 3. 25. 2:40:15 PM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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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3.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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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정하고 동선을 짤 때, 우선 고려하게 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바로 미술관이다. 알고 있던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보는 것도 좋고, 미처 몰랐던 작품들을 찾는 것도 좋다. 한국의 유명한 미술관과 달리, 대단한 작품들이 미술관 곳곳에 무심히 퍼져있는 것도 좋고, 그런 작품들이 즐비한데도, 감상에 불편함 없이 공간이 여유롭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찬찬히 감상하는 분위기도 좋다. 외국도 미술관의 정책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알만한 미술관에서는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 촬영도 가능한 점도 좋다. 그게 고화질로 촬영한 책이나 미술관 웹사이트, TV와 뭐가 다르냐 싶을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포인트로 사진을 찍어 기억으로 남길 수 있어서 좋다.

지금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도 취소하고, 미술관·박물관도 문을 닫은 곳이 꽤 있어서 (그리고 열었다고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밀폐된 공간에 있을 생각을 하니 조금 꺼려진다)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종종 예전에 찍은 그림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방문했을 때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작품들도 다시 보고, 똑같은 작품을 각기 다른 때 또는 다른 장소에서 찍은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취향이 이렇게 한결같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출처: https://www.pxfuel.com/en/free-photo-qvedj>

어젯밤에도 그렇게 혼자 키득거리면서 그림 사진들을 줌인, 줌아웃을 하며 하나씩 뜯어 보고 있었는데, 인상 깊은 신문 기사를 보았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전시 관람을 유도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로 미술관에 직접 가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럴 수 없는 요즈음, 나처럼 방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지만, 단지 그림을 보고 싶어서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고, 책을 들춰보고, 이렇게 온라인 전시관을 클릭하는 동지들이 있구나 싶어서 참 반가웠다.

 

출처 :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1/2020031100159.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코로나에 멈춘 미술관, 안방 찾아간다... 온라인 전시 열풍

코로나19 확산세에 미술계도 ‘언택트’ 바람휴관 기간 온라인 콘텐츠 확대… 전시 생중계에 온라인 경매까지"미술 작품, 안방에서 감상하세요." 코..

biz.chosun.com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20&aid=0003274917&sid1=103&mode=LSD&mid=shm

 

고양시에 발묶인 인상파 컬렉션…코로나19가 바꿔놓은 미술계 풍경

모네, 세잔, 밀레, 드가, 마티스…. 미국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의 인상파 소장품 59점이 국내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발이 묶여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해외 작가가 참여하는 국제

news.naver.com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s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봄을 알리는 매화 꽃과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Vincent Van Gogh's Blossom Almond, 1890)

2020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떠나지 못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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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낭만에 대하여2020. 3. 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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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 곳곳에서 퍼지면서 반은 강제적으로 반은 자발적으로 조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분명 많은 사람들이 평소처럼 움직이고, 상점마다 사장과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마치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 연휴처럼 거리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한산하다. 명절처럼 고속도로와 영화관 등이 붐비는 것도아니다. 그나마 잠시 점심시간에 붐비나 싶었는데, 손님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하고 앉는다. 매일 아침 약국 앞에만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한국엔 지금 일상생활과 일상적이지 않은 생활이 묘하게 섞여있다. 전국 평균 기준(509.2명/km², 2015 통계청 인구조사)으로도 세계 13위권인 인구가 밀집한, 어딜 가든 사람이 바글바글한 작은 나라인데(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and_dependencies_by_population_density), 마치 그 숫자가 반의 반으로 줄은 것처럼 보인다. 나와 남을 위해, 최소한의 거리, 최소한의 사회 생활, 최소한의 경제 생활만 영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변한 우리 나라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쓸쓸함과 고독함을 그린 그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본 곳은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였다. 2층 미국 미술(American Art )구역에 걸려있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이라는 작품이 시카고라는 대도시, 마천루의 도시 한 귀퉁이에 자리한 것이 어쩐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American Art : Gallery 262에서

 

그림 속에는 총 4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리고 나는 이것도 호퍼의 그림치곤 꽤 많은 사람이 등장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단절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등을 돌리고 있는 중절모를 쓴 남자는 빈 의자들 옆에 홀로 외딴 섬처럼 앉아있다. 좀 더 안쪽에 위치한 세 사람은 얼핏 보면 한 무리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데이트를 하러 나온 듯한 복장인 남녀는 가까이 앉아있을 뿐, 여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종업원인 듯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걸로 보아 서로 이어져 있지 않는 느낌이다.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바텐더는, 마치 영화나 만화에서 보듯이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바텐더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의 자세는 어쩐지 사무적으로, 최소한의 대응을 손님에게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네 사람이 그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은 이어지지 않은 채 그저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바깥의 불꺼진 상점과 텅 빈 거리는 이 소외감과 고독을 이어줄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시카고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호퍼는 의도적으로 인간의 소외감이나 도시의 공허함을 상징으로 그려내려고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리켜서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대도시의 고독을 그렸던 거 같다(unconsciously, probably, I was painting the loneliness of a large city)" 라고 말했다고 한다 (출처: https://www.artic.edu/artworks/111628/nighthawks)

얼핏 보면 호퍼가 그렸던 대도시의 고독과 소외감이 마치 지금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듯 하다. 한산해진 거리가 그렇고, 눈에 띄게 사람이 줄어든 쇼핑몰과 도심이 그렇고, 마스크를 쓴 채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를 자제하는 모습이 그렇고, 음식점에서도 거리를 유지하며 띄엄띄엄 앉아있는 모습이 그렇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서로를 향한 거리감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호퍼의 그림과 달리 마음만은 서로를 향해 열려 가깝게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이웃 대구·경북 지역에 성금을 보내고 의료 봉사를 하러 달려가고, 온라인으로 구매한 제품을 성실하게 운반해주시는 집배원 및 택배 기사님들께 감사 인사를 하고, 뚝 떨어진 헌혈 보유량 소식에 전염병의 위험에도 국군장병들과 일반 시민들이 팔을 겉어붙인다.

분명 우리 모두 호퍼의 그림 속 어딘가에 있는 듯 하면서도, 상냥한 눈인사와 배려에, 열려있는 따뜻한 마음에, 그림을 가득 채운 소외감이, 밤새 계속될 것 같았던 고독이 어느샌가 녹고 있는 듯 한 그런 요즈음이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s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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