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내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 같다.
익숙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감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일을 도전하곤 한다. 너무 튈까봐 시도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이라던가 색상이라던가, 길을 걷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나도 모르게 몸을 둠칫둠칫 흔들어보기도 하고, 어느 외국인의 눈맞춤에 활짝 웃으며 답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내 마음을 사로 잡은 장소에 내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싶어 마치 모델이 된 듯 과감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마치 부자가 된 듯 지갑을 열어 내 마음을 울리는 예술 작품을, 또는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사기도 한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던 길가의 꽃도, 하늘도, 노을도, 여행지에서는 남다르게 보인다. 마치 내가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다. 제주도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에서도 그랬다. 그저 바다를 건너 왔다는, 멕시코가 원산지라는 선인장 씨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어느새 군락지를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는 소식에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월령리 선인장 마을에서 거친 바다를 헤치고 찾아와, 또다시 제주도의 거친 바람과 파도를 이겨내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마주했다. 제주도의 까만 현무암 위에서 초록빛을 내며 어우러져 있는 조화로움을 느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듯 따뜻하게 감싸는, 다음날을 기약하며 마지막으로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았다.
다른 누군가라는 느낌이 들고 나서야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른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루를 또 하루 살았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TV에서는 이 노을과 어울리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I Will Not Forget You>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늘도 참,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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