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2020. 12.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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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에 전국적으로 첫 눈이 왔다. 자고 일어났더니 하얀 세상에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져 배시시 웃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옴짝달싹 못 하고 심지어 사우나나 목욕탕 방문도 힘든 일년을 보낸 지금은 너무 먼 옛날 이야기같이 들리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 다가오면 으례 온천 여행을 가야겠구나 생각했었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많은 액티비티와 풍경이 있겠지만, 한동안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건 '야외에서 눈을 바라보거나 맞으면서 노천 온천을 즐기는 유키미부로(雪見風呂, 설견풍여)' 여행이었다. 한국에 눈이 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노천 온천을 할 만한 곳이 흔치 않았던 지라, 처음 그 로망을 실현했던 곳은 일본 홋카이도였다. 

원래 계획했던 삿포로를 관광하는 일정에 온천을 추가한 거라 개인 욕실이 있는 료칸 대신 대욕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삿포로시 근처에도 좋은 온천지들이 있었지만, 조금 특이한 곳에 가고 싶어서 알아본 곳이 삿포로에서 버스 타고 약 1시간 거리의 치토세(Chitose)에 위치한 "마루코마 료칸(Marukoma Onsen Ryokan)"이었다.

출처 : 마루코마 공식 홈페이지

이 료칸의 온천은 시코쿠 호수(Lake Shikotsu)와 접해있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욕장과 호수와 산을 바라볼 수 있는 노천 온천도 있지만, 호숫가 바로 옆에 호수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돌담으로 호수와 구분을 지어 만들어 놓은 노천 온천도 있다. 일본에서도 20여군데 밖에 없는 자연 온천이라길래 이게 궁금해서 굳이 치토세를 찾아갔었다. 자연 온천이라라더니 온천탕의 높낮이는 호수 수면 높이와 비슷해서 1년동안 시기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래서인지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현재 온천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해놓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겨울에는 수면 높이가 낮아진다. 

대욕장과 붙어있는 노천 온천과 달리 호숫가 있는 노천 온천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야외다. 물론 길이 나 있긴 하지만 야외라서 혹시나 누가 지켜보지 않을까 살짝 당황스럽다. 그래도 이 산골짜기에 누가 굳이 오겠는가 싶은 마음에 용기를 갖고 후다닥 호숫가로 다가갔다. 짧은 길이었지만 겨울의 추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불었다. 그런 숲길을 거쳐 온천에 몸을 담그면 머리는 차갑지만 몸은 뜨끈한 온천의 정석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생각해보니 노천 온천도 어찌보면 호수에 몸을 담그는 건데 일단 몸을 담그고 나면 걱정이 덜 되는 건 왜일까). 그리고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면 내 앞의 호수는 얼어있고 산과 들판엔 하얗게 눈이 쌓여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랄까. 노천 온천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이 준 것을 누리다보면 자연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호숫가 옆의 노천 온천

실내 욕탕 안에는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어서 안타깝게도 사진은 남기지 못했는데 (그리고 거의 항상 사람이 있다) 일부 개념없는 중국인들이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어찌나 찍어대던지, 눈살이 찌푸려졌었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매너없이 굴고 싶진 않아서 욕탕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개장 전에 홀로 노천 온천에 갈 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몇장 남겼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계절 사진은 홈페이지 사진을 들고 왔다. 이렇게 호수 옆에서 바라본 풍경도 좋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았기에 사진이 없는 게 조금 아쉬울 만도 하지만 그래도 그냥 눈으로, 마음으로 시코쿠 호수와 마루코마 온천을 담아왔음에도 겨울이면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예의를 지키길 잘 했다 싶다.

언젠가 이 시기가 지나고 다시 겨울이 오면 눈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기고 싶다.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도는 곳은 일본 소설 <설국 雪國 : 유키구니>의 배경이라는 니가타(新潟)현이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방사능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라 과연 죽기 전에 갈 수 있을까 싶긴 하다. 그래도 겨울이면 떠오르는 <설국>의 유명한 문장은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지 않을까 싶다. 그 아름다운 문장에 이끌려 <설국>을 시작하지만 내용이 내 취향이 아닌지라 매번 초반만 읽고 손 놓곤 했었다. 집에 있는 게 가장 좋은 올 겨울엔 <설국>을 끝까지 다 읽으면서 예전 여행들을 추억하며 보내야겠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면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하얘졌다.'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옮긴이 김진욱)

 

 

<For Your Information>

웹사이트 (※ 구글 번역을 활용하세요) : www.marukoma.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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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marukoma.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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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11. 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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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내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 같다.

익숙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감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일을 도전하곤 한다. 너무 튈까봐 시도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이라던가 색상이라던가, 길을 걷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나도 모르게 몸을 둠칫둠칫 흔들어보기도 하고, 어느 외국인의 눈맞춤에 활짝 웃으며 답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내 마음을 사로 잡은 장소에 내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싶어 마치 모델이 된 듯 과감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마치 부자가 된 듯 지갑을 열어 내 마음을 울리는 예술 작품을, 또는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사기도 한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던 길가의 꽃도, 하늘도, 노을도, 여행지에서는 남다르게 보인다. 마치 내가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다. 제주도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에서도 그랬다. 그저 바다를 건너 왔다는, 멕시코가 원산지라는 선인장 씨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어느새 군락지를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는 소식에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월령리 선인장 마을에서 거친 바다를 헤치고 찾아와, 또다시 제주도의 거친 바람과 파도를 이겨내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마주했다. 제주도의 까만 현무암 위에서 초록빛을 내며 어우러져 있는 조화로움을 느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듯 따뜻하게 감싸는, 다음날을 기약하며 마지막으로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았다. 

다른 누군가라는 느낌이 들고 나서야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른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루를 또 하루 살았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TV에서는 이 노을과 어울리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I Will Not Forget You>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늘도 참, 좋은 밤이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 &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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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10. 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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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여러번 방문해도 오름에 올랐던 적은 없었다. 워낙 갈 곳도 많고 할 곳도 많다보니 산을 오르는 "등산" 또는 길을 걷는 "산책" 느낌의 오름을 굳이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람이 많이 없거나, 밀폐되지 않은 공간을 방문하는 걸 선호하게 됐고, 제주도의 오름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괜찮은 언택트 여행지 중 하나인 것 같다.

그 중 금오름을 택한 이유는, 숙소에서 차로 10여분 거리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검색을 통해서 이효리와 아이유가 오르고, 이효리가 노래 "서울" 뮤직 비디오를 찍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더워지기 전, 오전에 오름을 오르기로 했는데, 오름 초입의 주차장(방문 당시 무료)에는 이미 주차된 차가 꽤 있었다. 쨍쨍한 해와 파란 하늘은 보기 좋았지만 곧 더워질 것을 의미하기도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금오름에 대하여

금오름은 크게 고민 없이 주차장에서 정상을 향해 가서 한바퀴를 돌면 된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따라서 계속 오르면 어느 순간 그늘 없는 길이 나오고 그대로 정상이 드러난다. 쉬지 않고 걸으면 10분~15분정도 걸리고,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높낮이 없이, 시작부터 정상까지 쭈욱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에 따라 조금 힘에 부칠 수도 있으니 중간중간 쉬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금오름 올라가는 길

오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시원스레 제주도 풍경이 펼쳐진다. 오르기 전엔 단순히 서쪽에 있는 오름이라 일몰 명소이려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방이 뻥 뚫려있으니 걸리적 거리는 것 없이 제주를 느끼기기에 참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굳이 일몰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금오름은 분화구 내에 산정화구호가 있다. 마치 백록담처럼. 예전엔 물이 많았다는 걸로 보아, 더더욱 백록담이 떠올려졌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조금 덜 채워진 듯한 화구호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말과 소들의 존재도 나에게 평화로움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금오름

산정화구호를 내려다보며 분화구를 한바퀴 돌면서 제주를 바라보았다. 제주의 동쪽, 북쪽, 서쪽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남쪽 방향은 또다시 위로 올라가야해서 잠시 고민했다. 산이라면 정상을 가보겠지만, 이 곳은 오름. 오르는 대신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금오름

가까이서 바라보는 산정화구호는 또다른 느낌이다. 작고 아담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큰 화구호였다.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던 말들은 가까이 다가가니 꽤 크다. 그들의 평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발끝에 풀들이 스치고,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제주가 내 곁을 스친다. 사람들이 왜 오름을 오르는지, 금오름을 한번 오른 것만으로도 알 것 같았다.

금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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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8. 2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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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 해서인지, 그리고 무의식 중에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서인지, 웅장하고 광활한 자연 환경을 그리워하며 그 속에 푸욱 빠지고 싶은 순간이 부쩍 많아졌다. 오늘 블로그에 나누고 싶은 사진은, 오트트리아 할슈타트 호수 관광을 마치고 지나가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멈췄던 곳의 풍경이다.

요새 나는 매일 일어나는 삶의 작은 어떤 것, 그러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일희일비하며 지낸다. 전례없이 길었던 올 여름 장마로 인해 하루 종일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100m를 채 걷기도 전에 땀이 나게 하는 답답한 습도는 불쾌했고, 타오르는 듯 쨍한 햇빛에 눈이 절로 찡그려지기도 하고, 여름의 끝자락에 갑작스레 다가오는 태풍 소식은 마치 뒷통수를 맞은 듯 화가 난다.

매일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에도 이렇게 감정이 가벼이 움직이는데 하물며 예측할 수 없는 인간사는 어떠하랴. 잔뜩 기대하고 찾아간 오스트리아였는데 이 곳에서도 날씨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복병이었다. 분명 어제는 만연한 봄의 얼굴을 하고 나를 맞이했던 하늘이, 어느새 불온한 구름을 가득 품고 눈을 한웅큼씩 뿌려댔다. 폭설이었다. 덕분에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시작한 나의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대장정은 시작도 전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망대, 온기가 사라진 관광지, 운행하지 않는 열차, 날씨에 맞지 않는 옷 등등, 갑자기 휘몰아친 겨울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으면서도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며 마음이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이 출렁출렁 위아래를 넘나들곤 했다. 그런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잔잔한 할슈타트 호수와 인근의 산을 덮은 눈자락을 보며, 내가 보고자 했던 아름다움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연은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 덤덤하게 있었다. 그 곳에도 아침과 밤이 있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지만, 고요하게 미동도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천천히 꾸준하게 싹도 틔고 꽃도 피우고 잎도 내고 열매도 맺고 조용히 잠이 든다. 매순간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과 끝이 있고 다시 또 처음과 끝이 있다. 이런 모습도 아름답다, 라는 생각도 들고, 이 또한 지나가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 내내 시끄러웠던 나의 마음이 대자연 앞에 잠잠해지던 시간이었다.

 

[랜선여행] 캐나다의 겨울과 스탠딩 에그의 Miss You

겨울엔 유키미부로(雪見風呂 눈을 바라보며 노천 온천 즐기기)

[랜선여행] 겨울과 영화 (러브레터)와 오타루

한때 잊어버렸던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다시 느끼다

미국 & 캐나다 여행기 / 후기 / 에세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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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6. 16.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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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도 불어온 미각의 탐구, 맛집 후기가 이제는 익숙하면서도, 여행지에 가서는 기껏해야 한번이나 두번 방문하는데 그 곳을 내가 맛집이라고 소개해도 될까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그저, 내 입맛에 맞았거나, 맞지 않았거나는 간단하게 전달하고, 그 외에 음식점을 선택하는데 고민할 만한 부수적인 것들(예: 주차장, 운영시간, 분위기, 친절 등)을 얘기해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솔직히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글도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올해쯤 미국에 한번 가볼까 했었는데, 아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 여행 사진들을 뒤적거리다보니 발견한 것이 있다. 어떤 여행기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멋진 맛집들을, 몇달 전부터 예약하여 손꼽아 기다리고 방문하여 남긴 글들이 있다. 특히 뉴욕이나 LA 같은 미국의 대도시에는 도시의 차도남 차도녀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휘어잡은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아서인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대도시라서 그런지, 유명 음식점들을 방문한 후기가 꽤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미국까지 가서도 대부분 평소에도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먹곤 했는데, 그마저도 동네 음식점이거나, 아니면 왠만하면 다 알만한 프랜차이즈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수많은 민족들이 사는 미국에서 동네 어딜가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메뉴라면, 또는 성공할 정도의 큰 프랜차이즈라면,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음식이 아닐까 하는 전제가 내 머릿속에 깔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가면 주로 먹는 음식이 무엇이냐, 지금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이냐, 바로 이런 것들이다.

 

1. 뉴욕의 얇고 기름진 동네 피자

2. 햄버거 & 프렌치 프라이 (인&아웃이나, 쉐이크 쉑이나, 파이브 가이즈나...)

※ 후기 포스팅 참고 : [맛집] 미국 3대 인기 버거 프랜차이즈 - 파이브 가이즈 (Five Guys)

3. 뉴욕 길거리의 핫도그

4. 미트볼 소스 스파게티 (왠지 서브웨이 샌드위치 메뉴도 생각난다)

5. (치폴레) 브리또

6. 라자냐

7. (맥도날드) 애플파이

8. 각종 베이글 & 크림치즈

9. 따뜻하고 바삭한 머핀(탑)

10. 중국 음식점 배달 음식 (특히 볶음밥과 면요리..)

 

그렇다. 별 거 없다. 평범하고 값 싼 것들. 그래서 자주 먹었고 그만큼 나의 입과 눈과 머리와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 한국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긴 하지만, 마치 한국에 오면 비싸지 않고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라서 더 맛있는 떡볶이를 찾는 것처럼, 미국에 가면 찾게 된다.

올해 초 방영했던 tvN 예능에 나온 "이서진의 뉴욕 뉴욕"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간지러운 나의 마음을 달래주듯, 이서진씨가 이런 음식들을 먹으러 다녔기 떄문이다. 그래, 이거지, 싶었다. 멋드러진, 일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한 미쉐린 음식점을 손꼽아 기다려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길 걷다가 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코너에서 우회전하다가도 금세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이 내가 지금 미국에 가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들이다. 그 평범하고 특별했던 시간들을 그리며 오늘도 잠에 든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첫 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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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캐나다 여행기 / 후기 / 에세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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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3. 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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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에그타르트를 두 곳에서 먹고 확연히 다른 맛을 느껴서 두 곳을 다 추천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쉽게도 이 생각을 실행하지 못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곳이 그 사이에 폐점한 사실을 방금 알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내 추천으로 이 곳에 다녀온 친구도 있었는데, 몇 안 되는 맛집 추천 리스트에서 지워야 한다니 너무 아쉽다.

 

1. 타이청 베이커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소호 거리에서 우리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가이드님이 대신 줄서서 사주신 에그타르트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우리는 줄을 서지 않았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평일 낮인데도 줄이 꽤 길었다.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포르투갈에서 원조를 먹어보지 못해 비교할 순 없지만, 타이청의 에그타르트는 살짝 덜 익은 느낌이면서 겉의 빵이 바삭바삭해서 나름 잘 어울렸다. 확실히 우리나라 일반 빵찝에서 파는 맛과 다르니 센트럴 지역에 방문한다면 간 김에 한번쯤 맛봐도 좋을 것 같다.

타이청 베이커리 (Tai Cheong Bakery)

 

2. 포르투갈 음식점 알마

실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이 음식점 때문이었는데... 처음엔 꼭 찾아갈 생각이 없었는데, 쇼핑센터를 헤매다가 배가 고파서 예전에 저장해두었던 블로거의 추천이 생각나 방문했다. 포르투갈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어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갔었으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주문이 잘못 들어갔는지, 아니면 음식이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오래 걸리는지, 메인 디쉬를 다 먹고도 20여분을 기다린 것 같다. 주위의 시선이 따가울 때쯤 결국 웨이터를 불러 물어보니, 10분 정도 후에 드디어 먹을 수 있었던 에그 타르트! 그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다 잊혀질 만큼,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었으면 하나 더 시키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타이청 베이커리와는 다르게 노릇노릇 구워져서 빵도 바삭바삭하다. 타이청은 조금 말랑말랑한 느낌이고 나는 알마의 에그 타르트가 더 취향에 맞는 듯 하다. 그래서 다음에 홍콩에 가면 꼭 원없이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참 아쉽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저녁에 큰 창으로 홍콩 불꽃놀이와 야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다른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면 야경을 보기 위해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폐점된 알마 (Alma)

 

 

<For Your Information>

타이청 베이커리 (Tai Cheong Bakery)

운영시간 : 월~일 8 am.~8:30p.m. (침사추이는 30분 일찍 닫음)

주소 :

- 센트럴점 : Shop C, G/F, Lyndhurst BLDG 35 Lyndhurst Terrace, Central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3분 거리니 함께 방문하는 것이 동선상 좋다.

- 침사추이점 : KP-31&32 Star Ferry Pier, Kowloon Point, Tsim Sha Tsui, Kowloon

 

포르투갈 음식점 알마 (Alma Portuguese Grill)

Harbour City Ocean Terminal에 있었으나 폐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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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
취향의 발견2020. 3.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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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3.1절로 3월이 시작하고, 연이어 학교의 입학·개학·개강이 이어지고, 계절상 봄이 시작되어 1월이 지나갔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시작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반면 북미쪽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3월(또는 2월) 즈음이면, 봄방학(March Break)이 있다. 한 학년이 마치고 시작하는 3~4개월의 긴 여름방학 전, 학기 중 마지막 방학이다. 그리고 매년 3월 17일에 돌아오는 세인트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과 겹칠 때가 많은데, 마침 시카고 방문 일정이 겹쳐서 오랜만에 색다른 느낌의 3월을 만끽했던 적이 있었다.

※ 세인트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 :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영국계(Romano-British) 패트릭(AD 385–461)은 어렸을 적 아일랜드로 납치 당하여 노예로 일하였다. 어느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탈출에 성공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성직자가 되었는데,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가 가톨릭을 전파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려 매년 그의 사망일 3월 17일이면 사순절 기간임에도 음식·음주 제한을 풀어주고 문화·종교 행사를 연다. 세인트 패트릭이 성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세잎클로버(토끼풀)를 사용했던 것을 유래로 초록색 악세사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공식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은 북미 지역 곳곳에서는 이맘때가 되면 상점과 펍이 초록으로 물들고, 당일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초록색 악세사리로 꾸미고 먹고 마시며 논다. 하루종일 취해서 바보같은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끔 초록색 악세사리를 착용하지 않으면 해꼬지를 당하기도 한다 (아시아인은 여행객으로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진 않는다는데 이것도 다 케바케일 것이다).

내가 그동안 다녔던 북미 도시들은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지 않아서 그저 아이리시 펍 부근에서 그 느낌을 느끼는 정도였는데, 시카고는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꽤 많은 모양인지 행사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무려,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인다!

원래는 오염된 강의 쓰레기 등을 찾고 그 주위에 일시적인 표식을 하기 위해 초록색이 나타나는 약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시장의 친구가 강 전체를 초록색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하여 1962년 무렵부터 시카고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다니? 처음 그 설명을 들었을 땐 막연하게 오염 물질에 오염된 듯한, 또는 녹조현상처럼 보일 진득한 죽음의 향기를 지닌 초록 강을 떠올렸었다. 그때까지 "초록색 물"은 나에게 그런 이미지였다. 그러나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마주한 시카고의 초록색 강은 그보다 맑고 투명했다. 마치 미술 시간 물통에 초록색 수채화 물감을 씻어내린 듯 해서 어린 마법사의 장난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시카고의 고층 빌딩과 파아란 하늘과 초록빛 강은 생각보다 참 잘 어울렸다.

이 날 이 시간 이 장소에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 미리 준비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우연찮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멋진 광경을 보게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것을 미리 찾아보고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미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편이라 이렇게 현지에서 귓동냥으로 얻은 정보로 여행 전엔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한 것이 선물을 받은 듯 즐거웠다. 그래서, 실은 다른 일정 때문에 어찌 보면 또다른 메인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시내 퍼레이드는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꺼움을 잊고 싶지 않았던지 내 카메라의 시카고 사진첩에는 유독 많은 셀피와 시카고 도심 풍경 사진이 남았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퍼레이드도 봐야지라는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고 다음 여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올해는 또다른 축제를 누려보고자 유럽의 카니발을 계획했건만, 계획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하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기나 보다. 1월부터 슬금슬금 세계를 불안하게 했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2월에 우리나라를 덮쳤고, 아쉬운 마음 부여잡고 여행을 취소했다.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어서, 베니스 카니발은 일찍 마무리 되었고, 귀국편 비행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만약 계획대로 유럽에 있었다면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을 뻔 했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그렇게 떠나지 못한 여행의 시간도 지나가고, 2020년 세인트 패트릭의 날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올해 시카고는 17일 당일에 다른 행사가 겹쳐서 3월 14일(토) 아침 9시에 강을 물들이고, 정오에 퍼레이드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행사가 무사히 치뤄질지 걱정도 되고, 3월인데도 집에 콕 박혀 시간을 보내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옛사진을 보며 다시 추억을 떠올려보고, 지구촌 어디선가의 소식에 설레일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For Your Information>

세인트 패트릭의 날은 매년 3월 17일이지만, 올해의 시카고와 같이 메인 행사 시간은 해마다 다를 수 있다. 또 지역마다 퍼레이드 외에 색다른 행사를 할 것이다. 그러니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여행을 고려중이라면 미리 방문 지역의 행사 관련 홈페이지나 지역 신문을 찾아보도록 하자.

2020년의 시카고 행사 관련 사항은 하기 링크의 기사들을 참고하시길.. (관광 정보는 덤!)

출처 : https://www.timeout.com/chicago/st-patricks-day

 

Where to celebrate St. Patrick's Day in Chicago

Celebrate St. Patrick's Day in Chicago with our guide to all of the best things to do, including parades, river dyeing and plenty of green beer.

www.timeout.com

출처 : https://chicago.suntimes.com/metro-state/2020/3/9/21168783/st-patricks-day-in-chicago-getting-there-street-closures-parade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celebrating St. Patrick’s Day in Chicago

When and where are the city’s official parades and parties? We’ve got the 411 here.

chicago.suntimes.com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s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관광] 시카고 존 핸콕 센터 95층의 시그니쳐 룸 (The Signature Room at the 95th®, John Hankok Center)

[공항] 시카고 에어프랑스 - KLM 라운지 후기 (Air France - KLM Lounge, Chicago O'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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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