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2020. 3.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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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3.1절로 3월이 시작하고, 연이어 학교의 입학·개학·개강이 이어지고, 계절상 봄이 시작되어 1월이 지나갔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시작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반면 북미쪽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3월(또는 2월) 즈음이면, 봄방학(March Break)이 있다. 한 학년이 마치고 시작하는 3~4개월의 긴 여름방학 전, 학기 중 마지막 방학이다. 그리고 매년 3월 17일에 돌아오는 세인트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과 겹칠 때가 많은데, 마침 시카고 방문 일정이 겹쳐서 오랜만에 색다른 느낌의 3월을 만끽했던 적이 있었다.

※ 세인트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 :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영국계(Romano-British) 패트릭(AD 385–461)은 어렸을 적 아일랜드로 납치 당하여 노예로 일하였다. 어느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탈출에 성공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성직자가 되었는데,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가 가톨릭을 전파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려 매년 그의 사망일 3월 17일이면 사순절 기간임에도 음식·음주 제한을 풀어주고 문화·종교 행사를 연다. 세인트 패트릭이 성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세잎클로버(토끼풀)를 사용했던 것을 유래로 초록색 악세사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공식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은 북미 지역 곳곳에서는 이맘때가 되면 상점과 펍이 초록으로 물들고, 당일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초록색 악세사리로 꾸미고 먹고 마시며 논다. 하루종일 취해서 바보같은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끔 초록색 악세사리를 착용하지 않으면 해꼬지를 당하기도 한다 (아시아인은 여행객으로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진 않는다는데 이것도 다 케바케일 것이다).

내가 그동안 다녔던 북미 도시들은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지 않아서 그저 아이리시 펍 부근에서 그 느낌을 느끼는 정도였는데, 시카고는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꽤 많은 모양인지 행사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무려,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인다!

원래는 오염된 강의 쓰레기 등을 찾고 그 주위에 일시적인 표식을 하기 위해 초록색이 나타나는 약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시장의 친구가 강 전체를 초록색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하여 1962년 무렵부터 시카고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다니? 처음 그 설명을 들었을 땐 막연하게 오염 물질에 오염된 듯한, 또는 녹조현상처럼 보일 진득한 죽음의 향기를 지닌 초록 강을 떠올렸었다. 그때까지 "초록색 물"은 나에게 그런 이미지였다. 그러나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마주한 시카고의 초록색 강은 그보다 맑고 투명했다. 마치 미술 시간 물통에 초록색 수채화 물감을 씻어내린 듯 해서 어린 마법사의 장난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시카고의 고층 빌딩과 파아란 하늘과 초록빛 강은 생각보다 참 잘 어울렸다.

이 날 이 시간 이 장소에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 미리 준비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우연찮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멋진 광경을 보게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것을 미리 찾아보고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미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편이라 이렇게 현지에서 귓동냥으로 얻은 정보로 여행 전엔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한 것이 선물을 받은 듯 즐거웠다. 그래서, 실은 다른 일정 때문에 어찌 보면 또다른 메인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시내 퍼레이드는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꺼움을 잊고 싶지 않았던지 내 카메라의 시카고 사진첩에는 유독 많은 셀피와 시카고 도심 풍경 사진이 남았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퍼레이드도 봐야지라는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고 다음 여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올해는 또다른 축제를 누려보고자 유럽의 카니발을 계획했건만, 계획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하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기나 보다. 1월부터 슬금슬금 세계를 불안하게 했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2월에 우리나라를 덮쳤고, 아쉬운 마음 부여잡고 여행을 취소했다.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어서, 베니스 카니발은 일찍 마무리 되었고, 귀국편 비행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만약 계획대로 유럽에 있었다면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을 뻔 했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그렇게 떠나지 못한 여행의 시간도 지나가고, 2020년 세인트 패트릭의 날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올해 시카고는 17일 당일에 다른 행사가 겹쳐서 3월 14일(토) 아침 9시에 강을 물들이고, 정오에 퍼레이드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행사가 무사히 치뤄질지 걱정도 되고, 3월인데도 집에 콕 박혀 시간을 보내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옛사진을 보며 다시 추억을 떠올려보고, 지구촌 어디선가의 소식에 설레일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For Your Information>

세인트 패트릭의 날은 매년 3월 17일이지만, 올해의 시카고와 같이 메인 행사 시간은 해마다 다를 수 있다. 또 지역마다 퍼레이드 외에 색다른 행사를 할 것이다. 그러니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여행을 고려중이라면 미리 방문 지역의 행사 관련 홈페이지나 지역 신문을 찾아보도록 하자.

2020년의 시카고 행사 관련 사항은 하기 링크의 기사들을 참고하시길.. (관광 정보는 덤!)

출처 : https://www.timeout.com/chicago/st-patricks-day

 

Where to celebrate St. Patrick's Day in Chicago

Celebrate St. Patrick's Day in Chicago with our guide to all of the best things to do, including parades, river dyeing and plenty of green beer.

www.timeout.com

출처 : https://chicago.suntimes.com/metro-state/2020/3/9/21168783/st-patricks-day-in-chicago-getting-there-street-closures-parade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celebrating St. Patrick’s Day in Chicago

When and where are the city’s official parades and parties? We’ve got the 411 here.

chicago.suntimes.com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s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관광] 시카고 존 핸콕 센터 95층의 시그니쳐 룸 (The Signature Room at the 95th®, John Hankok Center)

[공항] 시카고 에어프랑스 - KLM 라운지 후기 (Air France - KLM Lounge, Chicago O'Hare)

 

그 외 시카고 여행기/후기/관련 이야기 모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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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