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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08 [랜선여행] 겨울과 영화 (러브레터)와 오타루
낭만에 대하여2021. 1. 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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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겨울의 이미지는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일본에 살아봤던 것도 아니고, 겨울에 일본 여행을 자주 갔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라던 시절 내내 살았던 곳들은 겨울이면 눈이 한번 올까말까한 곳들이었고, 철이 들어서 몇 년간은 겨울이면 쌓인 눈이 봄까지 녹지 않는 곳에 산 적도 있어서 눈이 지겨워졌을 정도이니, 겨울이면 그런 곳들이 떠올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겨울이면 일본이 생각난다. 그 시작이 어디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겨울'의 이미지를 각인 시킨 것은 내가 살았던 곳도, 내가 여행갔던 곳도, 내가 가봤던 스키장도, 자고 일어나면 보곤 했던 눈이 덮여있던 마당도, 미끄러웠던 골목길도, 꽁꽁 얼은 호숫가도 아니었다. 조금 엉뚱하겠지만 내게 겨울 이미지, 겨울 감성, 겨울의 멋을 알려준 영화는 오래된 일본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이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

겨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레터"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눈밭에 누워 숨을 참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 장면이 이어진다. 추모식 후, 우연히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그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낸 히로코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의 옛주소로 안부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절대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답장을 받게 되어 매우 놀라는데, 알고보니 이츠키가 다녔던 중학교의 동명이인이었던 동창생, 도서관 사서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런 우연으로 둘은 편지를 주고 받게 되고 그러면서 과거의 후지이 이츠키와의 추억을 나누는 것은 물론, 그들이 알지 못했던 이츠키의 비밀도 알게 된다.

와타나베 히로코가 등장한 첫 장면부터, 한국에서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오껭키데스카, 와따시와 껭키데스 :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를 유행시켰던 명장면이 나온 설원, 후지이 이츠키가 살고 있는 눈이 많이 오는 오타루까지, 영화에서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얀 겨울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나간 사람과 잊혀졌던 추억과 전하지 못 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겨울 풍경 위에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겨울의 이미지가 영화와 함께 더욱 더 깨끗하고 맑게 기억에 남게 된 것 같다.

<러브레터> 포스터

그래서 마침내 오타루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부푼 꿈을 안고 갔었다. 도시 전체에서 영화 "러브레터"를 느낄 것이라 예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작 일본에서는 흥행하지 않았던 영화라는 걸 깜빡했다. 그보다 오타루는 오르골로, 디저트로, 그리고 운하로 유명했고 그래서 나의 여정은 유명한 오르골당을 구경하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상상했던 겨울의 도시 오타루답게 전날 내렸던 눈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운하에 도착하니 어느새 내 머리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오는 건 반가웠지만, 눈속에서 뚜벅이로 몇시간을 다니는 건 아무래도 지치는 일이다. 오타루에서 하룻밤을 잤어야 일정이 넉넉했을텐데, 삿포로에 숙소를 잡아둔 과거의 나의 결정에 아쉬움을 느끼며, 기차가 가득 차기 전에 돌아가기 위해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그렇게 나의 첫 오타루 방문은 싱겁게 끝났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이 바뀌어버린 러브레터 촬영지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츠키의 집은 전소되어 집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미리 철저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왠지 다시 가더라도 그 때 그 장면을 찾아낼 수도, 느낄수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편으론 눈 오는 오타루를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싶다. 눈이 가득 쌓인 오타와에서 자전거를 타고 걷고 뛰었던 후지이 이츠키처럼, 그런 오타와를 한달음에 달려갔던 와타나베 히로코처럼,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도 그 곳에 있었으니까. 생각과는 달랐던 오타와였는데,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일본의 겨울 풍경에 대한 나의 감성은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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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