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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3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낭만에 대하여2020. 3. 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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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 곳곳에서 퍼지면서 반은 강제적으로 반은 자발적으로 조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분명 많은 사람들이 평소처럼 움직이고, 상점마다 사장과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마치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 연휴처럼 거리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한산하다. 명절처럼 고속도로와 영화관 등이 붐비는 것도아니다. 그나마 잠시 점심시간에 붐비나 싶었는데, 손님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하고 앉는다. 매일 아침 약국 앞에만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한국엔 지금 일상생활과 일상적이지 않은 생활이 묘하게 섞여있다. 전국 평균 기준(509.2명/km², 2015 통계청 인구조사)으로도 세계 13위권인 인구가 밀집한, 어딜 가든 사람이 바글바글한 작은 나라인데(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and_dependencies_by_population_density), 마치 그 숫자가 반의 반으로 줄은 것처럼 보인다. 나와 남을 위해, 최소한의 거리, 최소한의 사회 생활, 최소한의 경제 생활만 영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변한 우리 나라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쓸쓸함과 고독함을 그린 그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본 곳은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였다. 2층 미국 미술(American Art )구역에 걸려있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이라는 작품이 시카고라는 대도시, 마천루의 도시 한 귀퉁이에 자리한 것이 어쩐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American Art : Gallery 262에서

 

그림 속에는 총 4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리고 나는 이것도 호퍼의 그림치곤 꽤 많은 사람이 등장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단절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등을 돌리고 있는 중절모를 쓴 남자는 빈 의자들 옆에 홀로 외딴 섬처럼 앉아있다. 좀 더 안쪽에 위치한 세 사람은 얼핏 보면 한 무리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데이트를 하러 나온 듯한 복장인 남녀는 가까이 앉아있을 뿐, 여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종업원인 듯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걸로 보아 서로 이어져 있지 않는 느낌이다.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바텐더는, 마치 영화나 만화에서 보듯이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바텐더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의 자세는 어쩐지 사무적으로, 최소한의 대응을 손님에게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네 사람이 그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은 이어지지 않은 채 그저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바깥의 불꺼진 상점과 텅 빈 거리는 이 소외감과 고독을 이어줄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시카고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호퍼는 의도적으로 인간의 소외감이나 도시의 공허함을 상징으로 그려내려고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리켜서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대도시의 고독을 그렸던 거 같다(unconsciously, probably, I was painting the loneliness of a large city)" 라고 말했다고 한다 (출처: https://www.artic.edu/artworks/111628/nighthawks)

얼핏 보면 호퍼가 그렸던 대도시의 고독과 소외감이 마치 지금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듯 하다. 한산해진 거리가 그렇고, 눈에 띄게 사람이 줄어든 쇼핑몰과 도심이 그렇고, 마스크를 쓴 채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를 자제하는 모습이 그렇고, 음식점에서도 거리를 유지하며 띄엄띄엄 앉아있는 모습이 그렇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서로를 향한 거리감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호퍼의 그림과 달리 마음만은 서로를 향해 열려 가깝게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이웃 대구·경북 지역에 성금을 보내고 의료 봉사를 하러 달려가고, 온라인으로 구매한 제품을 성실하게 운반해주시는 집배원 및 택배 기사님들께 감사 인사를 하고, 뚝 떨어진 헌혈 보유량 소식에 전염병의 위험에도 국군장병들과 일반 시민들이 팔을 겉어붙인다.

분명 우리 모두 호퍼의 그림 속 어딘가에 있는 듯 하면서도, 상냥한 눈인사와 배려에, 열려있는 따뜻한 마음에, 그림을 가득 채운 소외감이, 밤새 계속될 것 같았던 고독이 어느샌가 녹고 있는 듯 한 그런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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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