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2020. 4. 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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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다. 올해는 그들도 힘들었는지, 동네 어귀에 벚꽃들이 해거리를 하는 듯 피어난 꽃들이 작년보다 작다. 그나마 하이얗게 피어난 벚꽃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 했는데 곧 질 것 같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거리더니 어느새 살랑살랑 조그마한 벚꽃잎이 떨어져 흩날린다. 그렇게 바닥에 점점이 알알이 흩어져있는 벚꽃잎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그림들이 있다. 바로 점을 찍어서 그렸다는 조르주 쇠라의 그림들이다. 그 중 책에서 자주 봤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on La Grande Jatte)>가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있었다.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European Painting and Sculpture : Gallery 240에서

미술관에서 직접 보니 생각보다 그림의 크기가 컸다 (207.5 × 308.1 cm, 출처: Art Institute of Chicago). 키를 훌쩍 뛰어넘는 큰 그림이 걸려있는데, 다가가면 수많은 다른 색깔의 작은 점들이 보인다. 조르루 쇠라의 작품과 기법은 미술 시험의 단골 소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쇠라는 다른 화가처럼 물감의 여러 색을 혼합해서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색의 점들을 일일히 찍어서 전체 그림을 보면 잔상 효과로 인하여 다른 색깔이 보이도록 하는 점묘법(點描法, pointilism)을 고안했다 (출처: https://www.scienceall.com/조르주-쇠라-빛을-과학적으로-분석하라/). 가까이서 보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색의 점들이 보인다. 그러나 물러서서 보면 처음에 봤던 그 색깔이다. 이 큰 캔버스를 점으로 뒤덮다니, 그것도 어느 색깔들을 배치해야 그림을 볼 때 원하는 색깔로 보일지 생각하면서, 우리네 어머니가 "한땀한땀" 바느질 하듯 정성스럽게 그렸으리라. 글로 어렴풋이 배워온 이 신비함은 그림을 직접 마주해야 현실이 된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줌인으로 찍은 사진으로 그 감동을 남겨놓고 싶었지만, 책이나 모니터 속의 그림은 이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이제보니 쇠라의 작품이 동네 길가에도 찾아온 느낌이다. 푸른 풀밭 위에도, 텃밭 거름더미 위에도, 놀이터 우레탄 바닥 위에도, 아스팔트 도로 위에도 하얀색 벚꽃이 점점이 찍혀있다. 매일 지나가던 평범한 장소들이 어여쁘게 보인다. 매일 마주했던 평범한 풍경들에서 봄을 느낀다. 벚꽃으로 인해 평소와 달라보이는 색깔들, 자연이 찍어낸 점묘법인가 싶다. 조르주 쇠라의 그림이 그리우면서도, 집 앞의 자연이 수놓는 새로운 선물에 설레이는 벚꽃 계절이다.

 

웹사이트 : https://www.artic.edu/artworks/27992/a-sunday-on-la-grande-jatte-1884

 

A Sunday on La Grande Jatte — 1884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Georges Seurat, 1884/86

www.artic.edu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s Nighthawks, 1942)

봄을 알리는 매화 꽃과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Vincent Van Gogh's Blossom Almond, 1890)

[랜선여행] 겨울과 영화 (러브레터)와 오타루

한때 잊어버렸던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다시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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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안 Wise I's